은혜 게시판

사우디 이야기

2016.11.08 16:53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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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아라비아에서 8년 정도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본다. 우스운 일, 희한한 일,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아직도 그곳에서는 일어나고 있었다. 기억나는 대로 몇 가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이제는 본국인 조종사로 차츰 교체하고 있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전문기술 부족으로 미국인 조종사들을 기장으로 많이 고용했었다.

미국에서 비행기로 떠나 13시간 후면 사우디 제다 공항에 도착한다. 비행기 착륙 전 기장이 기내방송을 한다.

“여러분, 사우디아라비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곳 현재 시간은 밤 11시 35분이며 기후는……. 여러분들은 시계를 8시간 뒤로 돌려주시고, 생활방식은 500년 뒤로 돌려놓으시면 되겠습니다.”

정말로, 장난꾸러기 기장이 영어로 기내방송을 그렇게 했다고 남편이 그리말한다. 알아들은 사람들은 죄다 웃었고 물론 아랍어로는 안했겠지만… 비행기 탈 때는 보통 옷을 입었던 많은 아랍인 여자들은 까만 자루에 까만 수건을 두르고 남자들은 흰옷에 흰 두건으로 모두들 변복을 한다. 외국인들 중에서도 더러 옷을 바꾸어 입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입국할 땐 별 탈이 없었는데 한번은 큰일이 났었단다. 사우디를 통과, 유럽 어디로 가는 비행기가 한 시간 정도 거기서 주유를하며 대기한 경우였다. 사우디를 입국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전지식으로 옷차림을 무난하게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통과 여객들은 못 들어서인지 아니면 무신경인지 늘씬한 미녀 셋이 미니스커트 차림이었단다. 갑자기 나타난 빨간 수염 밀가루 푸대들이(종교경찰들) 미녀들 다리를 막대기로 때리면서 아랍어로 마구 떠들어댔다.(종교 경찰들은 영어 쓰는 걸 못 봤다.) 이 유럽 여성들이 깜짝 놀란 데다 성질이 나서 가만히 있었겠는가? 대판 싸움이 나고 비행기는 떠나는데, 이 세 여자는 감옥행(진짜임), 물론 다음날 비행기로 떠나기는 했지만 이게 무슨 헤프닝이란 말인가.그 나라의

풍습을 어긴 승객들도 문제겠지만 격리수용했다가 보내든지 아니면 국제공항의 특성상 이해를 해주든지 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튼 여자들을 위해 준다는 그들의 방법은 우리 눈에 아닌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몇 가지의 특정 직업(교사,간호사,의사등) 외에는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부족한 일손은 모두 제삼국인 남자들에게 맡겨졌다. 여자는 고등교육을 받았어도 생활에 활용할 수가 없었고, 어린 아가씨들은 이쁘고 날씬한데 결혼하고 몇 년 안에 거의 다 푸짐해지는 게 할 일 없음이 아닐까? 운전수에, 정원사에, 유모에, 식모에, 남편 또한 몇 년 못 가서 제2, 제3,을 구하니….. 좀 산다는 집이 그렇고 돈 없는 남자들은 결혼할 수가 없다.

내 생각에 제일 불쌍한 여자들을 외국교육을 받은 아랍계 여자들이다. 이슬람교도는 절대로 타종교와 결혼 할 수 없고,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여성 딸들은 비행기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 삶을 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혹시 70년대에 새벽 단잠을 깨우던 새마을 노래를 기억하는가? 아침 일찍 동네 어귀마다 메어놓은 확성기를 통해 일어나 일하라고 떠들어대던 그 소음. 사우디의 새벽은 그렇게 시작된다.

걸프전 때나 아니 요즘도 중동이 매스컴을 타,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 교회가 많이 있는 것처럼 그 나라에도 모스크라는 회당이 널려있다. 다니엘서에 보면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데 이 사람들은 다섯 번이다. 새벽 먼동이 틀 때, 정오쯤, 오후 네시 경, 일곱시 경, 밤 아홉시 반경. 정확한 시간을 모르는 이유는 그들이 월력을 사용하며 시간이 조금씩 변경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일 년이 열세달이 되어 봉급 타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선 새벽을 깨우는 아침 쌀라-기도시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었지만 깊은 잠을 못자는 사람들은 그 시간이 되어 한번 잠이깨면 더 잘 수가 없다. 모스크 탑 네 벽에 스피커를 달아놓고 5분 정도를 읊어대는데 노래도 아니고 시조도 아니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엄청 크게 질러댄다. 잠을 깼다가 다시 잘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

또 다른 불편은 꼭 쇼핑을 가면 -쌀라-에 걸린다. 티브이 방송을 보고(기도시간 일정을 알려줌) 그시간을 비껴가도 쇼핑 도중에 걸려서 가게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들어가 마치고 오든지, 시간 맞춰 갔는데도 문을 안 열어서 한참씩 찜통 더위에서 시간을 버려야한다.

남편은 비행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니 쇼핑도 한꺼번에 몰아서 해야 하는데 쇼핑도중에 -쌀라-에 걸려서, 20분가량을 밖으로 쫓겨나 밤이라도 푹푹 찌는데서 있어야 한다면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꺼먼 포대기, 꺼먼 수건으로 두르고) 게다가 열두시반부터 네시반까지는 죄다 문을 닫는다. 너무 더워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그때에 잠을 잔다. 이래저래 남편들의 귀한시간은 사라져간다.

여자들이 운전을 할 수가 없고 또 남정네 없이 다니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자 셋이서 까만 거 안입고 쇼핑 나갔다가 시비가 생겨서 경찰서 신세를 진 일도 있었다.) 부인한테 무슨일이 생기면 그 책임이 남편인 까닭에 가능하면 함께 다닌다. 덕분에 사우디에서 몇 년을 살다온 부부들은 자동적으로 애처가가 되고 만다.

아랍인들의 열심은 그 도가 지나쳐서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해도 안된다. 쇼핑센터 구석에도 병풍치고 카펫트 깔고 기도처를 마련한다. 병원 구석에서도, 심지어는 비행기 안에서도 자신의 조그만 카펫을 펴놓고 기도를 한다. 우리는 승무원 가족 특혜로 일등석에 자주 앉는데, 사우디 시간으로 기도 시간이 되자 기내방송을 하고는 기장실에서 두 기장이 모두 나와 메카를 향해 엎드렸다 일어섰다 하며 기도를 한다. 비행기는 오토 파일럿트(자동장치)를 걸어놓았단다. 모든 사우디의 비행기 천정에는 메카쪽으로 화살표가 나침반처럼 표기되어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기도할 때에는 은밀히 골방에 들어가서 하라고 배운 것 같은데….

사우디-제다 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신고서를 작성한다. 종교-기독교 당당하게 나의 종교를 적었다. 그들도 외국인 개인의 종교는 인정한다. 하지만 종교서적의 반입은 금지되어 있고 모임 또한 금지되어있다.

사우디 생활 8년 동안 세분의 목사님을 모셨다. 처음 모시던 한목사님은 건축일로 사우디에 오셔서 건축 현장 콘테이너방에서 몇 명의 현장 인부들과 예배를 드리시다가 지금의 교민회관에서 천주교와 금요일-그곳의 주일-아침 저녁으로 번갈아 예배를 인도하셨다. 오랜 사우디 생활의 스트레스와 종교 탄압으로 그곳에서 순교하셨고 시신은 몇분의 집사님들이 사모님과 함께 대구 본가로 모셨다. 그후에 리아드(사우디 수도)에서 목회하시던 김목사님이 오셔서 3년을 시무하시다가 안식년이 되어 귀국하시고, 한국교단 선교본부에서 권목사님을 보내주셔서 내가 그곳을 뜨기까지 그분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몰래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성경 찬송을 들고 다니는 건 금물이었고 주보에 성경 구절과 찬송가를 모두 카피해서 그걸 의존해 예배를 드려야했다. 물론 모든 자료는 모아서 탈나지 않게 잘 처리 해야만 했다. 리아드에서는 종교경찰이 예배드리는 현장을 습격해 목사님과 성가대원들을 잡아간 경우도 있었다. 성가 대원들이 가운을 입고 있어서 대단한 지위의 사람들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성가대원들은 시말서를 쓰고 풀려나고 그 목사님은 강제 출국령. 그 후로 위장하기 위해 무슨 교육을 받는 것처럼 자료 사진들을 사방에 붙여놓기도 하고 운동복을 입고 테니스채나 골프채를 들고 교회에 가기도했다. 다행히 우리는 영사관 산하 교민회관을 빌려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했지만

그들의 무대뽀는 방심해서는 안 되었다. 때때로 특별단속이 있을 땐 모임을 중지하든지 개개인의 집을 빌려 구역 예배식으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어느 집으로 모이기로 했다가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취소하고 한두 분이 근처에 남아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장소가 작아 복도까지 여자들은 서서 들어야했지만 불편하고 힘들수록 더욱 신앙의 불은 뜨거워졌다.

우리교회는 설교테이프로 타 지역에도 선교를 했다. 두 시간 반 떨어진 공사 현장에 테이프를 보내고 선교팀이 정기적으로 찾아가 직접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다. 먼 길을 왔다고 갈 때마다 대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성지 메카 앞으로 뚫린 큰길을 두고 단속 때문에 험한 돌짝길로 빙 돌아 가야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은혜를 받기도 한다. 그 땅이 모세와 백성들이 40년을 방황하던 땅이 아닌가. 또 사막이 꽃이 피어 향내 나리라는 말을 눈으로 실감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막은 모래사막이지만 그곳은 물이 없어 메마른 삭막한 광야로 어쩌다 한번씩 오는 비에 허허벌판 너른 들녘에 잔잔한 야초가 활짝 피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떼 지어 다니는 낙타와 염소를 볼 수 있고 오리지날 베드윈족의 사는 모습도 간간히 만날 수 있었다. 또 비행기로 두시간 거리인 복숭아 꽃이 별나게 아름다운 카미스에도 세 번 목사님을 모시고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공산당과 다름없는 나라가 그곳 사우디이다. 자기가 사는 지역 밖으로 여행하려면 같은 사우디 안이라해도 여행증명서와 사유서를 경찰서에서 받아와야만 국내선 비행기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사람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단순한 교통법규위반이라도 마찬가지다.

카미스에는 미군부대(한인가족)와 농사짓는 한국인들이 조금 산다. 지대가 높아서 조금 선선하고 햇빛이 좋아서 채소농사가 잘되는 것 같다. 오가며 검사가 매우 심하고 우선 말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신앙에 있어서 특히 안일무사는 오히려 신앙의 적이라는 걸 깨달았고,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신앙은 더욱 견고해지고 크게 자란다는 것을 거기서 배웠다. 다른 바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나태해질 수도 있지만 한편 성경을 많이 읽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1/25/2010 1:08:16 PM: post edited by 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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